그들만의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기

그들만의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기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별로인 제품을 만든다면?

똑똑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들이 눈에 띄인다. 많이 부럽다. 저기에 들어가면 배울 것도 많겠다는 생각에 부풀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모여서 만든 제품이 너무 별로여서 놀란 적이 많다. 돌아보니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나, 정작 필요한 기능이 없거나 잘못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미용실은 한 달에 한 번 가는데 서비스의 세션 만료가 7일이어서 쓸 때마다 로그인 해야하면 뭐라고 해야할까.

둘, 널리 쓰이는 개념이나 용어가 있어도 이를 부정한다. 그들만의 언어와 논리가 제품에 가득 채워져있다. 같은 말을 다르게 써놓아서 되려 쓰기 어려웠다.

셋,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품을 쓰기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용자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을 때, 모양이 예쁜 것 빼고 장점이 없어 버리거나 레거시로 남겨진 경우도 있었다.

살짝 아이러니할 수 있다. 잘 하는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심지어 문제를 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제품을 만들 때에는 지능이나 실력보다, 관심을 갖고 도메인을 이해하는 것.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돌아보면 우리는 정말 많은 비용을 치뤄 배웠고, 여전히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입사하고 일을 하면서, 나는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고객이 늘기도 했고, 일도 프로세스에 맞춰 잘 진행되었다. 경쟁사들보다 기술력이 좋은데 팔리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했고. 한 주 동안 모인 VOC 목록이 비어있을 때는 안심을 했다.

그러다 일 년 즈음 지나서 도메인을 잘 아는 PO분이 합류했다.
며칠도 안되서 그 분이 “이건 F**king sh**이에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울컥했다. 그런데 이유를 들으며 등꼴이 오싹해졌다. 그제야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당시에 만들던 제품도 위에서 말한 ‘같은 생각’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어트리뷰션 정책. 다른 곳은 사용자 행동을 ‘이벤트(Event)’라고 부르는데 우리만 ‘목표(Goal)’라고 부르고 있고. 그래도 사용자들이 별 말이 없으니까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후 1년 반 동안은 많은 비용을 치뤘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팀 구조가 만들어졌고. 업무 프로세스가 만들어졌고. 그제야 ‘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게 만들어졌다.
진짜 사용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전에 없던 성장 속도를 수치로 확인하며 내심 뿌듯해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로 시작선에 섰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용은 상처를 동반한다. 열심히 생각하고 만들었음에도 결국 사용자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들었구나. 마음이 꽤나 무너져내렸고 의욕도 뚝 떨어졌다. 가끔씩 그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던 회사들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은 나쁜 의도 없이 그 분야를 바꾸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만약에 내가 창업을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한 번 즈음은 진지하게 되물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
그저 ‘사람들이 힙해보이려고 쓰는’ 소모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더 치르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