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nt-first를 삐딱하게 바라보며
우리는 왜 우리가 만든 환경에서 쫓겨나려 하는가?

피드를 열면 온통 AI 밭이라서 정신이 혼미해지곤 한다. 글과 사진, 영상, 그리고 안쓰면 뒤쳐진다는 식의 강의 팔이까지. 그 안에서도 요즘 많이 보이는 단어가 ‘Agent-first’ 인 것 같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나 인터넷이 AI가 쓰기에 불편하니 CLI 등 AI가 쓰기 편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말을 ‘Agent-first’라고 하나보다. 심지어는 ‘사람도 필요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아직 내가 너무 어려서 반항 심리가 있는 건가. 괜시리 삐딱해진다.
기술적 퇴보가 아닌가
사람들은 AI가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컴퓨터 안에 사는 AI가, 최소한 컴퓨터 안에서는 사람처럼(혹은 사람보다 더) 일을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 기술 발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보이는 CLI의 흐름은 뭐랄까…
마치 예전 브라우저들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툴바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유용하다고 잔뜩 설치하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르겠고 지우기도 어렵다. 웹/인터넷을 발전시키며 풀어왔던 문제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들었던 게 아닐까.
Whatever Happened To Browser Toolbars? - YouTube
다른 하나는, 허들을 낮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환경이 AI에게 복잡한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은 수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AI가 어려워한다’는 말로 허들을 낮추다보면 미래에 쏟아야 할 기술력을 엉뚱한 곳에 쓰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AI를 위한다는 말이 AI를 멍청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을 내쫒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게 더 중요한 이야기다. 현대의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은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이 유일한 사용자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I가 인터넷을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어야하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CLI를 만들거나 ‘새로운 인터넷’을 만든다면, 그 안에서 사람은 어떻게 AI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진다. CLI 커맨드를 실행해도 내부적으로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오픈소스가 아니거나 바이너리 파일이면 해석도 불가능하다. 당장 사람들은 Claude Code가 Hermes/Openclaw 관련 키워드만 있어도 요청을 거절하거나 요금 폭탄을 청구한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AI의 발전을 위해 사람의 이해나 참여, 제어를 줄여나가는 모습이, 마치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마법의 소라고동을 쥐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비약이 크긴 하지만, 사람이 만든 환경에서 사람이 쫓겨나는듯한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사양이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발전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당장 올해 1월~3월의 변화가 지난 해에 나온 모든 변화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심지어 더욱 속도가 붙으며 바뀌고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시스템이 더욱 구리고 낡았다고 느낄 수 있다. HTML은 나온지 30년이 넘었고,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만들어진지는 50년이 지났으니가. 충분히 변화를 꾀할 때이다.
그러나 ‘Agent-first’한 변화가 TELNET의 재림이라면 나는 사양이다. 세월을 거치며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이 정보를 쉽게 접하고, 또 쉽게 다룰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것의 결말이 사람을 내쫓는 것이라면, 이만한 블랙코미디가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