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열심히 하는 것에 관심을 잃었다. 드디어 배가 불렀냐고 묻는다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 힘을 쏟고 싶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가끔씩 우리는 이 둘을 착각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누군가는 목표나 이상 없이 그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게 1만 시간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열심히‘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잘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하나 찍어야 한다.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 다른 방법을 쓰는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 밑 빠진 둑에 시간과 노력을 붓고 실패한 뒤에 ’노력했으니 됐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나는 열불이 나서라도 못할 것 같다. 고통스러워도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표류하는 로켓
회사나 모임 등 집단에 속하면서 이를 더욱 크게 느낀다. 집단은 기본적으로 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마찰력이 작용해 느려지면 ‘더 앞으로 가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내세우며 구성원들을 몰아세우게 된다. 재밌는 건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본인이 몰아세우는 줄 모른다. 열심히를 말할수록 여유도, 신뢰도, 힘도 사라지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흔히 스타트업을 로켓으로 비유한다. 고지를 빠르게 점령하는 것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갈아넣더라도 성취하면 된다는 미명하에 많은 상처들을 남겼다. 변질된 애자일이 전염병처럼 유행하고, 프로세스가 방패막이로 전락했으며, 사람들은 폭언과 압박,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이게 맞는지 몰라 불안해지고 말았다. 이내 스스로는 햐안 재가 되고 조직은 원래의 이유와 목표를 잃은 채 표류한다.
잘 하는 것의 마법
기존의 성공 공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건 우리가 더이상 ’초기 시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창업을 한다면 예전과는 많은 것이 다를 것이다. 사람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상대해야한다. 익숙해진 행동을 쉽게 바꾸지 않기에 과실을 얻기까지 시간과 자원을 꽤 들여야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과 삶이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지켜내야한다.
이제는 ‘잘 하는 것의 마법’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으려고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빠르게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버퍼와 여유로 나의 삶을 지켜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신이 필요하다. 제품의 완성도를 정의하고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제품을 깎겠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뇌에 땀이 날 정도로 훈련을 하겠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겠다. 무엇보다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내 자신을 던져보겠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과거의 정답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명확히 말해두고 싶다.
잘 하고자 했던 과거에서
내가 받은 축복 중 하나가 있다면, 항상 ’더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 둘려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들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어설플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과 힘들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피어나는 안정감과 신뢰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런 분위기에 다시 안기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마치 과거에 놓고 온 짐이 있는 것처럼, 언제부턴가 그런 분위기와 기억들에서 멀어진듯한 기분이 든다.
회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코어 밸류 포스터를 보고 한숨을 쉰다. 이쁜 포스터에는 과거의 두근거림이 담겨있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