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제품이 승리한다
더 이상 질릴 구석이 없는 제품을 향해서

Aside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면서, 이전에 어떤 부족함이 있었을까 되짚어보았다. 퀄리티가 부족했냐? 아니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었냐? 일부는 맞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갈아넣지 않았냐? 휴일 없이 12시간 넘게 일했다.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려고 교통카드를 찍다가 생각이 들었다. 진부한 제품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진부한 제품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쉽다.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을 ‘문자인데 공짜로 쓸 수 있는거’라고 소개했다. 많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된다. 십여년이 지나 카카오톡에 여러 기능들이 붙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카카오톡은 문자 앱이다.
다음으로, 비교가 된다.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은 제품, 비즈니스 등 모든 측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경쟁사를 한 곳만 집어보자. 그곳이 돈을 많이 벌고 있다면,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 경쟁사의 매출의 10%를 2~3년 안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도 좋겠다.
또한, 비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쌓기도 쉽다. 앞서 카카오톡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문자는 이미 전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문자 VS 카카오톡’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도 쉽고, 또 잘 통했다. (물론 너무 지나친 VS 놀이는 Rage baiting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제품의 측면에서는 만들어야 할 기능을 헤메지 않아서 좋다. 창업을 하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고객(혹은 스스로)의 반응이 없는데도 기능부터 만드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는 점이고,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상(像, image)’이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심지어 사람들이 제품을 쓰기 위해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지도 않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질릴 구석이 없다.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예전의 카카오톡은 진부한 제품이었지만(그래서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은 말도 안되는 쇼츠부터 시작해서, 열기만 해도 화가 날 정도로 질려버리게 만드는 구석들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반대로 Linear는 내게 여전히 진부한 제품이다. 회사에서 할 작업 정리하고 옮기고 공유하면 된다. Linear Agents도 AI에게 작업을 ‘할당’한다는 개념으로 구현되었기에 이질적이지 않다. 그 측면에서 Linear는 질릴 구석이 없는, 그렇기에 정말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Aside의 첫 번째 버전에서 진부한 제품을 만들지 못했을까?
캐럿을 만들면서 이미 우리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보다 더욱 깔끔하고 자동화되며 적극적인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은 두루뭉실하기에 그것을 코드로 옮기면 괴리감이 크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무언가가 나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되돌아보면 그냥 두려웠던 것 같다. 보통 진부한 제품들은 말로 주변에 설명하면 상대방은 한심하다는듯한 표정으로 “왜 그런 걸 만들어?”라는 말을 한다. 심지어 “OO 짭이네?”라는 소리도 듣는다. 멋져보이지도 않고 경쟁력이 있지도 않아보이기 때문에 위축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워할 이유가 크게 없다. YC를 하면서는 주변에서 압박을 많이 받았지만, 진부한 제품을 목표로 잡는다면 이제 해야할 일은 더 많이 덜어내고 사람들에게 많이 쥐어줘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안되면 안되는거지 뭐. 이제는 다시 진부한 제품으로 돌아갈 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