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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서 벗어나기

관성에서 벗어나기

새롭게 태어나는 미약한 관성에 안착하기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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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날짜를 보면 깜짝 놀란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순식간에 몇 주가 지나가있다. 팔다리가 더 생긴다고 나아질까. 머리와 몸을 효율적으로 굴리지 못하는 느낌을 봐서 아마 그대로일 것 같다.

시간을 돌려 나는 20대의 전반부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쓰기로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개발이 싫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잔뜩 있기도 했지만, 생각을 구체화하고 실현시키는 일은 항상 마음이 무겁게 느껴진 것이 더 크다.


생각은 관성이 되기 쉽다. 굳어진 생각에 끌려가며 이내 무뎌지고 만다.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조금은 외부에 의해, 큰 힘을 들여야만 한다. 비루한 양심과 모자란 상식에 위배되지 않는 ‘싫어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싫어하는 것을 계속 하면 끝이 오지 않을까. 혹시 이게 시작일지도 모르니 조금은 익숙해지고 초연해지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그 선택 덕에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버틸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고, 끝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시 관성이 작용하는 것만 같다. 매일 사건사고가 터지며 재밌는 것만 일어나지 않는다. 부침과 성장이 하루하루 반복되더라도 멀리서 바라보면 잘 크고 있는 것이면 괜찮다. 요즘은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주관적으로 보아도 확신이 없다. 투정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큰 힘을 들여야 한다. 가꿔온 환경도, 함께 하던 사람들도, 하는 일의 본질도, 모두 버리고 몸을 던져 거칠게 굴러야 한다. 다만, 어떤 미련(아님 두려움)이 계속 붙잡는 것 같다. 물론 성장하며 기준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그게 요즘의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고민거리다. 점점 관성이 강해지면 남을 보채거나, 심하면 깎아내릴지도 모른다. 그 전에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 어떻게 관성을 벗어날 것인가. 그렇게 벗어나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는 미약한 관성에 안착할 것인가.

커버 사진: 작가 ‘쥬드 프라이데이’ 의 웹툰 ‘굿리스너’ 1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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