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베케이션 (다시)

롱 베케이션 (다시)

횡단보도의 파란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5초 남은걸 본 사람처럼 조급했던 요즘이었다. 건너려고 죽어라 뛴다고 한들 보통은 코앞에서 빨간불로 바뀐다. 괜히 나와 주변을 향해 화가 났던 요즘이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초부터 원인 모를 통증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금방 나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단 결과는 스트레스성 장애.

당장 스트레스 받는 걸 멈춰라. 심해지면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그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설마하며 넘길 수 없었다. 의도치않은 변곡점이 찾아온 것이다.

퇴사를 해야하나, 요즘 회사가 굉장히 멀고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인프콘 발표도 포기해야하나, 이런 이야기를 한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나. ‘포기하기’에 깊게 잠기니 사람이 소극적으로 변하더라.

그런데 포기하기와 멈추기는 같은 것일까? 급하다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치여서는 안될 것이다. 파란불을 기다리는 것을 ‘길 건너길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게는 다음을 기다리며 멈춰있을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불리한 국면에서 항상 신의 한 수가 나온다. 빈틈 없이 느껴졌던 삶에서도 쉼을 끼워넣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찾았다. 이를 놓치지 않았고 3개월의 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쉬는 동안에 회복을 중점에 두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지는 않을 것 같다. 아파도 뭔가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기에 어렵게 찾아온 이 시간을 여태껏 해보지 않은 걸 하는데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쉬고 난 뒤에 나의 용량이 조금은 더 커졌던 것 같다. 복무 끝나고 한 달 쉰 뒤에는 기술적 성장이 있었다. 리프레시 휴가로 삿포로에서 한 달 살고 온 뒤에는 몇 년간 손대지 않았던 복잡한 컴포넌트를 일주일만에 새로 짰다.

3년만에 다시 돌아온 ‘롱 베케이션’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얼마나 더 커져있을까 기대를 해보겠다. 그때 즈음에는 지금의 병도 필히 나아있을 거라고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