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보면 상대의 말이 참 어렵고 갑갑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의 다이얼을 돌려 적절한 모드를 찾기 시작한다.
모드
손목시계에 달린 용두를 돌릴 때를 생각하자. 세밀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바늘을 맞춰야한다. 용두를 돌리면 딸깍이는 소리도 난다.
대화는 모드를 맞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맥락을 생각하며 대화의 초점을 맞춰보자. 생각하기만 해도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일을 하며 리더십 레벨과 이야기하면 많이 답답했다. ‘우리 회사의 방향성은 뭐에요?’라고 물어도 만족스러운 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모드를 맞추며 나는 두 가지를 얻었다.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방향성’이라는 단어는 크고 두루뭉실하다. 지금은 그때마다 하나를 집어서 물어본다. ‘조직 내에 정보 공유가 더 잘되었으면 하시는 것 같은데, 맞을까요?’라고.
맞으면 그대로 가면 된다. 아니라면 보통 상대방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준다.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아닌 것 같아도 꾸역꾸역 참고 들으면 대화는 산으로 가고 나는 화병만 난다. 초점을 알고 있으니 부담없이 대화를 멈출 수 있었다. ‘잠깐만요’라던가 ‘저희 지금까지 이야기한게 이런데…’ 같은 말들. 상대방도 그걸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어댑터
모드를 찾으면 다음은 어댑터를 만들 차례다. 어댑터는 서로 다른 두 인터페이스를 이어준다. 100%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차이를 알고 발을 맞춰보자.
상대와 나를 이어주는 어댑터를 만들어보자. 이미 우리는 모드를 통해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이야기 하다보면 서로 공유하는 자원이나 맥락을 더 알게 된다. ‘이렇게 비유를 들어볼까?’나 ‘저 말은 이런 뜻이구나’하는 컨버터 역시 만들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대표가 숫자로 표현하면 수용력이 높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70% 정도 확신이 든다’고 말한다. 디자이너분과는 ‘여기 클릭이 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영역을 짚고 원하는 상태를 이야기하여 디자이너분이 탐색하실 수 있게 유도한다.
충분히 어댑터가 쌓이면 추상화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비슷해보이는 어댑터를 복사, 붙여넣기해볼 수 있다. 패턴이 보이면 공통 클래스로 묶어보기도 한다. 관건은 개발에서도 그렇듯 적당한 추상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팁과 함정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모드와 어댑터가 나를 숨기고 바꾸는 것이 아니냐고.
동의하지 않는다. 모드와 어댑터는 나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타인과 맞물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나를 굽히는 것도,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다.
모드에 익숙해지면 프리셋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업무 모드’라면 문제 원인을 파악해 현재 자원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편의점 의자 모드’라면 깊은 고민을 끌어내고 위로해주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어댑터는 이해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상대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알려고 할 수록 힘들어진다. 그래서 내가 대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빨리, 작게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서로의 인터페이스가 조금씩 맞물리는 때가 올까. 내가 먼저 놓아버리지 않으면 오긴 오더라.
다이얼을 돌리다 딱 맞아떨어지면 기분 좋은 ‘딸깍’ 소리와 함께 손가락으로 기분 좋은 느낌이 전해진다. 대화도 그렇다. 서로가 맞물리며 찾아오는 편안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