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우리들

2023년의 우리들

구름처럼 천천히, 하지만 매우 빠르게 흘러가기

구름처럼 천천히, 하지만 매우 빠르게 마지막 주가 지나간다.
분명 시작에는 모든 것에 기운이 빠지고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여유와 즐거움을 떠올리는 내 자신이 있다. 살아남는 것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며, 느긋하고 담백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떠올리고 바라보고 있다.

삿포로에서 보낸 2주

비슷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마음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했다. 삿포로에서 2주 살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오랫동안 미뤄온 내 작은 소원이었다. 겨울을 좋아하기도 하고, 온천에 몸을 담근 채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생각했었다.

사실 잠깐이라고 해도 정든 마을을 떠나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말들이 흘러넘치는 공간으로 내딛는 것은 조금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히려 작은 순간들에 놀라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

T38 전망대에서 타임랩스를 찍으며 코딩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는 라인 개발자가 버그를 찾아줘서 같이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 개봉하기 전에 일본 극장에서 보며 더 몰입했던 순간도. 긴린소에서 오타루치코의 야경을, 카이 포로토에서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보았을 때의 마음도.

그 이질적인 공간에서 나는 눈치볼 것도 없었고, 무언가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환기되는 기분을 온전히 즐기는 내 자신이 있었다. 다음에는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코드와 거리두며 알게 된 것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 ‘이걸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라는 마음이 무언가를 이뤄내는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를 처음 맡고, ‘성과를 높이려면?’, ‘여기는 너무 노후된 코드라서 불안해’, ‘일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다들 피곤해보여’ 같은 고민은 가득한데 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 막막했다. 그러다 두 가지 결정을 하며 실마리를 잡았다.

하나, Product Writing 팀과 자주 이야기하며 돕고 싶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유저 가이드를 모두 새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며 만난 여러 기술적 과제를 해결한 이야기를 정리해 FEConf에서 발표할 수 있었고, PW팀도 2달 만에 10배 더 좋은 가이드를 만들어냈다.

둘, ‘생각할 시간이 너무 없어 생각할 시간을 강제로 정했다’는 CTO님의 말에 착안해 피트스탑을 도입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 3시~7시에 모여 기술부채 청산을 위한 시도, 기능 개발 후 아쉬웠던 코드의 개선을 했다. 운영에 아쉬움은 있지만 한동안 정체된 기술 관련 작업에 큰 진전을 이뤄냈다.

돕고 싶다, 재밌을 것 같다는 마음을 모두가 갖게 하기. 원인과 현상을 구별하고, 핵심부터 작게 시도하기. 여유를 만들어내기. 이게 나의 역할이 아닐까.

Agile Coach, Squared

내 문제의 답을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AC2 레벨1(46기)에 10월 말부터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갑갑함도 있었고, 함께 자라기 책에서 말하는 ‘야생학습’이 무엇일지 호기심도 있었다.

AC2에서는 지식과 이야기를 찾아 땀이 날 정도로 생각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시간이 지나며 에너지도 생기고, 남들과의 대화도 즐거워졌다. 내가 남의 문제를 들어주고 방법을 설계, 제안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먹구름 같던 문제들이 개어가고 다른 구름이 찾아오는 것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내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 처음에는 여러 의도된(?) 트러블이 발생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은 삶의 해상도가 올라가며 문제로 느끼지 않았던 것이 문제로 느껴지며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보다. 사람들이 ‘찬희님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네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너무 위로가 되었어요’라고 말해준다. 나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변화는 ‘큰 폭의 성장’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민함의 맥을 잡아가며 즐겁게 원하는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잡다한 삶의 이야기

2023년에는 실리카겔, Weezer, Vaundy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실리카겔은 두 번의 단독 콘서트에 모두 참석해 황홀한 경험을 했다. 나는 실리카겔의 노래와 가사, 뮤직비디오에서 큰 이질감과 충격을 느끼지만, 그것이 나에게, 나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처럼 느끼곤 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것 같다.

올초에 운동을 시작해서 약 15kg을 감량했다. 몸의 상태가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치료로 인해 불어난 체중 증가, 각종 잔병을 많이 털어내었다. 헬스장 트레이너분은 무게를 드는 것보다 좋은 자세를 배우고 습관을 들이는 것에 집중해 하나하나 잘 잡아주셨다. 덕분에 이제는 나도 운동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지금의 조직에 거의 7년 가까이 있다보니, 한 번 조직을 재정비할 필요가 보였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만큼 더 빠르게, 더 큰 임팩트를, 모두 함께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AC2에서 배운 내용을 조직에 하나씩 적용해보는 중이다. 회사 인원의 1/4이 참여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고, CEO, CTO, COO님의 고민 상담(?) 같은 것도 해보고, 다른 팀원분께 몇 가지 테크닉도 공유하고. 내년에는 더 많은 조직의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구름처럼 천천히, 하지만 매우 빠르게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최후의 일격으로 마무리.

♪ Vaundy — トドメの一撃(최후의 일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