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에 잠기다

사이렌 소리에 잠기다

아무리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10년 지났구나. 강산이 바뀔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1교시 쉬는시간에 심심해서 폰을 켰다. 첫 화면에 무슨 배 사진이 있었다. 속보가 떴는데 우리 학교 바로 옆 학교의 수학여행 가던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주변 친구들도 깜짝 놀라 웅성거렸다.

2교시가 지났다. 구조가 거의 끝났다는 자막에 마음이 놓였다. 3교시가 지났다. 분명히 1시간이 지났는데 뭔가 상황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4교시가 지났다. 아직 배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배는 1교시 때에 비해 너무나도 많이 잠겨있었다.

그때 우리 학교 식당에는 40인치 조금 안되는 TV가 있었다. 그날의 식당은 유난히 조용했고, 2학년 선배들이 TV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서있었다. 선배들의 친구들 중 상당수가 그 학교에 있다고 전해들었다.

...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어떻게든 구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하고 슬픈 내용이 더 많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학교 광장의 벤치에서 울고 있던 사람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자정이 되어 소등 시간이 되었다. 평소라면 키득거리거나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의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창문 밖에는 조그마한 붉은 불빛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사이렌 소리가 하나, 둘, 연거푸 울렸다. 누군가의 ‘아이고’ 하는 커다란 통곡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흘렀고 잠에 들 수 없었다.

세상이 슬픈 소식에 잠겨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서는 즐거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이야기소리가 다시 하나 둘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점호 마치고 기숙사에서 누워있는데 갑자기 사감이 모든 학생을 1층 로비에 집결시켰다. 그리고는 엎드려뻗쳐를 한시간 정도 시켰던 것 같다. 사감은 ‘세상이 슬픈 소식에 잠겨있는데 너희는 왜 시끄럽게 쳐웃고 지내냐’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웃고 있다고 마음이 안 아픈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감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모두가 아팠다.

...

휴일이 되었다. 잔류를 선택하지 않아 집에 돌아가야 했다. 학교 앞에서 101번 버스를 잡아 시외버스터미널에 간 뒤에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것이 나의 하교길이었다.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았다. 햇빛이 강하게 들어왔고 노란 꽃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버스에 틀어진 라디오에는 여전히 기적이 있길 바라던 사연들이 흘러나왔다. 버스 창밖으로 본 시내 모습에서 사람을 찾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더니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걱정을 많이 했다고. 가족이 모여 같이 밥을 먹다가 알게 되었는데, 우리 집 근처에 있던 고등학교도 그 배를 탈 뻔했지만, 순서가 꼬여 다른 배를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그 이야기가 전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더라. 그 학교 근처에 걸린 노란 리본을 보니 울음이 나오더라.

...

이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다.

어느 1교시 국어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이야기를 쭉 하시다가 갑자기 우시는 모습을 보았다. 재치가 있으면서도 선을 잘 지키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또래상담 봉사활동을 하며 몇몇 선배들과 친구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을 한동안 크게 느꼈다.

사람이 끊겼던 시내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까지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주말 외출을 나갔을 때, 그제야 예전처럼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으니까.

...

바뀌지 않는 것에 화를 내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제 잊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10년이라는 시간은 수많은 것이 바뀌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무리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그날부터 한 달 동안의 기억은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고, 머릿속에서 흐려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았다.

아마 앞으로도 4월이 오면 그날 밤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