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케이크
찰나의 순간을 위해 긴 시간을 허우적거려야 한다면

케이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크림은 느끼하게, 케이크 시트는 퍽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딸기에는 관심이 있다. 사람마다 먹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딸기 케이크를 먹는 건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딸기부터 먹는 사람, 그리고 딸기를 아껴두었다 마지막에 먹는 사람.
딸기를 먼저 먹는다면, 딸기의 달고 상큼한 맛이 식욕을 돋구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케이크 시트와 크림을 먹어 해치워야 한다. 반대로 딸기를 아껴둔다면, 처음에 꾸역꾸역 케이크 시트와 크림을 먹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딸기를 먹을 때의 성취감은 이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둘 모두 딸기를 먹어치운 후부터는 큰 허전함이 밀려온다.
급진적인 누군가는 케이크를 잘게 다지거나 갈아버리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이 축복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거라 케이크를 한없이 먹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딸기 케이크를 먹는 것은 나름의 전략과 참을성, 그리고 수시로 동기를 되새기는 능력이 요구된다.
나의 전략은 딸기를 작게 쪼개두는 것이다. 그래서 빵 몇 입마다 딸기를 한 조각씩 먹는 것이다. 내가 끝까지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는 입가심을 해주는 딸기의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환기를 통해 케이크를 먹는 일을 식고문이 아닌 즐거움으로 남겨둘 수 있다.
딸기를 작게 잘랐을 때의 이점도 있다. 내가 고이 아껴둔 딸기를 어떤 몰상식한 사람이 대신 먹고나서 ‘너가 안 먹는 것 같아서 대신 먹었다’고 배려 아닌 배려를 했다고 해보자. 울화통이 터질 것이다. 씹는 쾌감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내 나름의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좋아하는 순간, 빛나는 순간은 찰나이다. 그 순간을 위해 끊임없는 고통과 지지부진함 속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들을 지키고 계속해서 떠올려야한다. 그럼에도 삶이 더 좋은 것은, 딸기 케이크는 딸기를 모두 먹어치우면 거기서 끝이지만, 삶은 친구든, 욕망이든, 무엇이든, 동력을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삶의 모든 순간이 축복으로 바뀌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