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Cha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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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sic Product

The Basic Product

클래식을 벗어나 기본적인 제품을 만드는 일에 관한 고민

Lee, Chanhee
·Oct 2, 2022·

3 min read

무슨 흐름이었는지는 기억이 조금 흐릿한데, 아마 변수명을 생각하다 그랬던 것 같다. Classic과 비슷한 단어를 오랫동안 고민했었는데, 고민도 하고 머리도 굴려봤지만,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즈음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나는 미치도록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일을 동경해왔다. 그 마음 하나로 뭐든 해보겠다며 지금의 판에 뛰어들었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쳐댔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입만 털었을 뿐 스스로가 ‘좋은 제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닮은 점도, 닿을 지점도 없는 두 질문은, 서로 맞물려 머릿속을 한참 헤집어놓다가 Basic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 단어를 중심으로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Classic과 Basic, Classic 대 Basic

Classic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항상 당연하게 있는 것, 어쩌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부르는 단어라고 한다. 보통 그러한 것들을 ‘클래식하다’고 부르니까. Basic과 Classic은 모두 과거를 기반으로 지금과 나중에 영향을 주는 느낌을 주는 단어같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Basic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끌렸다.

Classic은 어찌 되었든 그 자체만으로는 과거에 멈춰있다. 하지만 Basic은 처절하고 끈질기게 ‘지금’을 쫓아간다. 연속된 시간이 쌓이고 아물며 ‘기본’이 만들어지고, 기본이 쌓이면 새로운 Classic이 된다.

당연히 시간을 들이면 우아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르는 맥락이 많으며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모나고 어설프더라도 ‘지금의 문제’‘지금의 정답’으로 풀어야만 한다.

아쉬운 만큼 기록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틈날 때마다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제품의 필수 기능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일 또는 삶의 흐름(Workflow) 안에 녹아들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는 ‘기본적인 제품(The Basic Product)’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담으로 이러한 흐름은 지금의 회사에서 B2B SaaS를 만들며 느끼는 감정과 매우 닮아있다. 그래서 더 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제 해결로 둔갑하는 것들

기본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맥락을 이해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 지점에서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다. ‘해결 방법’이 ‘제품’의 형태를 띠게 되면 ‘무조건 예쁘고 단순한 것’만이 좋은 결과물로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는 팀 중 하나는 정말 잘하시는 엔지니어, 디자이너분들이 많이 계신다. 하지만 제품을 써보면 예쁘기만 할 뿐, 필요한 기능이 없거나 숨겨져 있어 불편하다. 그리고 비싸다. 그분들이 문제 해결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두려웠다.

단순하고 예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로 둔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화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가리거나 이상한 곳에 두었다고 해보자. 나중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사용자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더라도 첫인상은 좋아도 쓰다 보면 불편함투성이라고 느낄 것 같다.

또 하나의 걱정은 제품을 만들수록 역설적으로 ‘제품의 문제에 점점 둔해진다’는 것이다. 자신도 느끼는 문제 중 하나다. 만들기만 할 뿐 써볼 생각은 적어지기에 단순한 버그도, 엇나가는 화면과 인터랙션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라 위의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진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은 머리 아프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그저 맥락 없이 예쁘고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재밌다. 시각적으로 결과물이 바로 보이고, 무언가를 해결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야 한다.
관심은 많지만 확실히 쉽지 않고 외로운 길이다.


새우깡과 펀더멘탈

예전에 들은 CSO님의 ‘새우깡 비즈니스론’이 생각난다. 모든 데이터 비즈니스는 크게 세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1) 더럽고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대신 해주기 → 2) 정량적인 분석 → 3) 인사이트 제공으로 구성된 것 같다고 한다.

다들 1층에서 3층으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아래 단계들이 부실해 돈을 벌 수도, 사업을 스케일링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서 새우깡이 나오는데, 새우깡 만드는 회사는 ‘새우깡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펀더멘탈(Fundamental)을 만들 수 있으며, 당장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면, 본인의 리소스를 쓰지 않고 인수 등을 통해 2층 혹은 3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

‘기본적인 제품’ 역시 ‘새우깡 비즈니스론’과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2~3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Dirty Job’을 해결하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많이 우당탕거릴 것이고, 힘들어서 꺾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면서 사랑과 주목을 받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솔직히 뚜렷한 것도 명확한 것도 없다)

기본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일단 계속 해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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