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망치로 제품 두드리기

돈까스 망치로 제품 두드리기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얼마나 말랑해야할까?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얼만큼 말랑해야할까. 소프트웨어 형태의 제품을 만들면서 은근히 고민될 때가 있다. ‘톤앤매너’라는 말보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적당한 메타포가 없어서 구석 한편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렇게 버려둔 이 주제를 며칠 전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으며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돈까스로 제품의 말랑함을 이야기한다? 싸이코 같은 발상이지만 그래서 재밌다.

어떻게, 얼마나 두드릴 것인가?

예전에 골목식당 에피소드 중 연돈에서 돈까스 고기를 준비하는 법을 본 적이 있다. 눈에 들어왔던 것은 돈까스 망치를, 넓게 펴는 용도로 하나, 부드럽게 만드는 용도로 하나. 총 2개 쓴다는 점이었다.’ 넓게’와 ‘부드럽게’라는 단어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제품을 설명하기에 좋은 단어다.

망치질 없는 돈까스를 사람들은 먹지 않는다. 너무 크고 질겨서 썰어먹을 수 없다. 반대로 지나치게 두드려 물렁하다못해 액체에 가까워진 것을 우리는 ‘돈까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당히 두드려 형태와 질감을 잡아야 한다. 망치질에 왕도는 없어서, 얇게 두드린 경양식 돈까스도 적당히 두툼한 일식 카츠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한 번 두드리면 되돌릴 수 없다. 망치질 한 번 한 번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제품도 어찌보면 비슷하다. 첫 아이디어나 사용자의 니즈만으로는 ‘제품이 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형태와 기능을 찾아 다듬어야한다. 한 번 제품에 씌운 색깔은 쉬이 지워지지 않기에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플렉스의 ‘생일 축하 기능’은 과연 필요할까. 얼마 전 권고사직을 받고 서류를 쓰러 플렉스에 들어갔다 생일 축하 알림을 보고 비참해졌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 만들어진 의도를 충분히 공감하지만, 사용하는 목적과 기능이 명확한 제품일수록(특히 B2B SaaS), 이를 가로막는 기능과 인터랙션에 사람들이 더욱 민감해지는 것 같다.

다른 하나로 ‘게이미피케이션 만능설’이 떠올랐다. 한때 기능을 눌러보게 하는 스텝 형태의 가이드, 특정 행동에 뱃지를 주는 리워드 시스템이 유행했었다. 온보딩의 부담감을 낮춘다, 인게이지를 높인다 등 여러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많이 사라졌는데… 눌러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플로우를 사람들이 진심으로 귀찮아한다는 것은 간과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설계 없이 만들어진 이런 기능들은 코드에도 큰 부채를 남겼다.

양배추 샐러드, 장국, 무엇을 곁들여야 할까

양배추 샐러드, 장국, 마카로니, 밥 등… 돈까스를 시키면 항상 함께 나오는 사이드 메뉴가 있다. 애드온(Add-on)으로 시켜먹을 수 있는 카레도 있고. 식욕을 돋구고 더욱 맛있게 느껴질 사이드 메뉴를 가게들은 항상 고민한다. 하다못해 다른 곳을 따라 양배추 샐러드를 낸다고 해도, 참깨 소스를 줄지 유자 소스를 줄지도 치열한 고민 끝에 정해지는 것들이다.

Airbridge 같은 B2B SaaS를 생각해보면, 소프트 프로덕트(Soft Product)라고 불리는 유저 가이드, CSM 온보딩 서포트, 매체/대행사와의 파트너 매니징이 있을 것 같고. 하드 프로덕트(Hard Product)라는 소프트웨어(웹앱, 백엔드 등)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Airbridge의 사용을 유도하는 작은 프로덕트(abit.ly)가 있다. 이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가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라도 경험이 좋지 못했다면 전체의 경험 역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사이드 메뉴의 완성도가 좋아도 필요한 메뉴가 없으면 아쉬움이 된다. 그렇기에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항상 고민해야한다. 제품을 구성하는 작은 제품에는 무엇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잘 챙겨갈 것이며.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결국은 한 번만 잡숴보게 만드는 것

나는 ‘OO 같은 제품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흥미가 있다. 얼마나 깊게 제품을 생각해보았는지, 무엇을 시도해보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 페이스북 같이 다른 제품을 든다면 좀 의심할 것 같고…

이번 글에서 나는 의식의 흐름으로 ‘돈까스 같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적절한 온기와 두께, 그리고 말랑함. 적절하게 곁들여먹을 수 있는 양배추 샐러드와 장국. 한 입 베어물었을 때 물리지 않고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주는 그런 돈까스 같은 제품을.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좋네요, 만들어볼까요?’ 라고 먼저 말하며 움직이는 개발을 하면 어떨까. 사이드 메뉴라도 탐험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