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말보다

미리 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말보다

문제의 방치와 방관을 넘어야 기대가 온다

미리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주에 일을 하며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미리 SAML SSO 작업을 했다면 금융사의 계정 관련 보안 요청을 금요일 퇴근 전에 처리하진 않았을 텐데. DevOps 엔지니어님이 Self-hosted Runner 적용을 제안해주셨을 때 바로 했다면 배포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였을 텐데… 하는 생각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문제를 방치하고 또 방관한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방치, 그리고 방관

어떤 문제가 있다고 치자. 업무 프로세스, 인간 관계 등 여러가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때 내가 잘 모른다고 문제를 가만히 두면 ‘방치’, 아는데 가만히 두면 ‘방관’이 된다. 그리고 방치보다 방관이 더욱 나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최근에 나는 대표의 업무 퍼포먼스가 많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대표의 낯빛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요새 무슨 일 있으세요?’라는 말 정도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당신의 퍼포먼스가 떨어졌다’는 문제를 꺼내지 못했기에 ‘방치’로 볼 수 있다. 이 말을 AC2 코칭에서 창준님께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문제라고 느낀 것이 있다면, 돌려말하거나 피하지 않고 직접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처음으로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제야 비로서 문제의 해결이 시작된다.

모르는 데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냐고.

예전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최근에 생각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누군가를 코칭하거나 상담할 때,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하면 문제를 잘 풀어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독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좋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내놓은 제안이나 해결책은 이미 그 사람이 해봤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은 나에 대한 답답함만 더 느낄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문제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문제와 거리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 있고,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해결해줄 수 있다.

똑바로 바라보리라

며칠 전, 번역가님과 이야기하다 이런 말이 나왔다. “개발자분들의 리소스가 비싸니까 중요도를 낮춰도 괜찮아요”. 그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목표는 둘의 비용을 모두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한다. ‘일을 잘하는 것’은 들어가는 비용과 에너지는 낮으면서 파급효과는 큰 일을 찾아 하는 것이니까.

물론 번역가님도 개발자들의 업무 부하나 피로도 등을 생각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분이 모든 스트레스와 업무를 끌어안는다면 이는 그분에게도, 혹은 나에게도, 방치 혹은 방관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바쁜 것은 맞지만) 바로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생각나 말씀드렸더니, 그분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좋을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좋을 때는 문제가 작을 때이다. 문제가 작을 때는 높은 확률로 지금이다. 지금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미리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기대를 품으며 사는 것이 더욱 즐겁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