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탈 때마다 참 무섭고 힘들다. 공황이 있는 나에게 비행기가 주는 두려움은 매우 크다. ‘의사지시대로’라고 써있는 긴급 약 없이는 탈 수도 없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움 이전에 마주해야하는 공포가 있다.
이번에 짧게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도 그런 진빠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두 가지 순간이 있어 글로 남겨두려고 한다.
패닉 흘려보내기
비행기를 타며 내가 제일 힘든 시간은 이륙 5분 전부터 감압이 끝나는 이륙 초반 15분까지다. 패닉에 빠져 식은땀이 나고, 숨도 안쉬어지고, 무언가를 만져도 느낌이 없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리고 예고없이 패닉이 나를 덮쳤다. 손에 약을 쥐고 먹을까말까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먼저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 크게 ‘HRV 높이기’와 ‘나란히 놓기’를 했다.
HRV(심박수 변동성, Heart Rate Variability)은 하나의 심장 주기부터 다음 심장 주기 사이의 시간 간격의 변화이다. HRV가 높을 수록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가 낮아진다. 이를 높일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호흡법 바꾸기’를 시도했다.
코로 숨을 깊이 4초 들이쉰다. 거기서 4초를 더 숨을 들이쉬어 폐를 빵빵하게 만든다. 그 후 4초간 입으로 숨을 뱉어낸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다보니 스텝이 꼬일 때 힘들었지만, 5~10분 정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품하는 것과 좀 비슷했다.
나란히 놓기는 두 대상을 서로 비교하고 대입도 해보며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는 광역버스와 비행기를 나란히 놓았다. 버스의 공황은 이겨냈으니까.
생각해보니까 비행기보다 버스가 더 힘든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밀집도도 높고, 더 덜컹거리고, 더 덥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비행기가 X축 대신 Y축으로 흔들린다는 점만 생각하다보니 두려움이 좀 줄었던 것 같다.
둘을 함께 해보니 몸의 감각도 되살아나고 호흡도 안정을 찾았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도 다시 느껴졌다. 힘이 많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약 없이 패닉을 이겨냈다는 점이 기쁘고 뿌듯하다.
들숨에 여유, 날숨에 배려
비행기의 두려움이 끝나면 다음으로는 이동의 공포가 있다. 이번에 서울로 돌아오는 야간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비행기가 조금 연착이 되며 마지막 공항버스를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부터 이거 어떻게 하고, 저거 어떻게 하고, 몇 분 걸릴 것 같은데 하며 스트레스가 늘어났다. 비행기 문이 곧 열린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평소와 다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방을 챙겨 좁은 비행기 복도에 낑기려고 했다. 마음이 급해 어정쩡하게 낑겨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툭툭 치더라.
“Are you gonna miss a plane?”
처음에는 잘 안들려서 못 알아들었는데, 당신이 내 캐리어를 치고 있어서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고는 당신이 급하면 먼저 가도 괜찮다고 했다.
순간 굉장히 미안해지면서 또 너무 감사했다. 그분에게 ‘내가 버스를 놓칠까봐 마음이 급했는데 감사하다’고 말하며 먼저 나올 수 있었다.
그 후에 죽어라 뛰었지만 코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평소라면 온갖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외국 분의 말과 배려가 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나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들숨에 여유, 날숨에 배려가 몸에 익는다면 어떨까. 내가 두렵고 힘들어하는 것들도 조금 더 다르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여유와 배려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