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hee

팀워크는 죽었다

색깔과 합을 맞춰나가는 팀플레이의 시대로

팀워크는 죽었다
Chanhee·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건반 한 음에서 Ye의 ‘Runaway’가 만들어진 이야기라던가, 언니네 이발관이 그렇게 싸우면서도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를 만들어낸 과정이라던가… 종종 영상이나 인터뷰를 찾아보며 음악가들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고 큰 자극을 받는다. 그 중에서 최근 나의 생각을 넓혀준 것은 밴드 실리카겔의 한 인터뷰에서 나온 문장이다. “하나의 대의를 향해서 가는 팀워크가 아니라 각자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물을 지향한다.”

우리가 기존에 팀워크라고 말하던 방식을 돌아보면, 대부분 위에서 큰 방향성과 목표를 정하면 아래에서 하달받아 수행하는 방식이다(바텀 업도 결국 위를 설득해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이라고 느껴진다). 시리즈 B, 카나리아 새들의 떼죽음에서도 적었지만, 회사는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은 공감도 되지 않고 즐겁지 않은 일에 파묻혀 일을 하다가 지쳐서 떠난다. 개인이 떠나면서 회사는 업무 맥락의 소실, 채용 및 재교육을 비롯한 비용을 치르게 되며, 미연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하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나중에야 잡게 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인터뷰에서 실리카겔은 팀워크의 대안으로 팀플레이를 제시한다. 공연에서는 상황마다 각자의 장점이 더욱 드러나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가 서포트를, 곡을 만들 때에는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골조 위에 각자의 색깔을 더해가며 ‘실리카겔스럽게’ 만든다고 말한다. 각자 개인 활동을 하며 경험을 쌓고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하고 그 경험을 다시 실리카겔에 가져온다. 이 글을 보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을 때여서 그랬을까.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직전에 세일즈 미팅 어시스턴트를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자주 쓰는 도구도 아니고, 뭘 만들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동의를 받기도 했고, 사용자 경험을 아무리 깎아도 사용자들은 미지근하다못해 아예 관심이 없었다.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재미가 없으니 죽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보게 된 팀플레이라는 말은 내게 ‘우리는 뭘 재밌어하지?’나 ‘우리는 뭘 잘하지?’ 같은 고민들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속도지속성을 고민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만약 창업이 망하지만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면, 빠르게 만들고 고치는 것을 적어도 3~5년은 계속, 혹은 더 빠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급격하게 뒤바뀌는 판 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변의 법칙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는 우리가 매일 쓰는 도구를 퀄리티 있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기술 광인이라는 점이었다. 더 미려한 사용자 경험을 만들겠다고 Chromium을 개조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예쁜 것이 나오면 바이너리를 뜯어가며 분석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우리였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의 피벗을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팀플레이는 이런 것 같다. 모두가 똑같이 동의하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만들고 또 조율하는 것. 매일 써보면서 문제가 보이면 바로 고치고, 생각나는 기능이나 더욱 개선할 수 있는 건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 어차피 같은 생각에서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되는 것 아닐까.
지금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지만, 또 지금만큼 재밌었던 적도 많이 없다. 만드는 게 즐거우니까 밤을 세우면서도 하고 싶어진다. 재미와 발산(ADHD 수준)은 속도와 지속성을 만들어주는 우리의 핵심 축이다. 계속해서 이 키워드를 팀에서 지켜나갈 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긍정하며 살아가자고 말했다.
팀워크는 죽었다. 이제는 나와 우리의 색깔을 찾고 서로 합을 맞춰나갈 때이다.
(그렇다고 ‘팀플레이를 합시다’ 라며 중소기업 부장님처럼 말하고 다니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