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우리들

2022년의 우리들

20대의 중반부로 넘어가기 전에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물베개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 바람이 꿈을 깨우는 것이 싫어 이불로 몸을 꽁꽁 둘러싼다. 겨울이 되면 매일 저녁마다 하는 일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은 사람들에게 설렘보다 후회를 더 남기는 것 같다.

여전히 내게 ‘시간’은 ‘반복되는 주기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 1년은 흘러갈 할 것을 쉽사리 흘려보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너무 몰입이 되어 마음 아팠던 날도, 일어나서는 안되었던 일도, 스스로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담백하게 바라볼 수 있는걸까.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기로 정하면서 ‘가장 내가 하기 싫고, 잘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하자고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작은 팀에 합류해 벌써 5년이 지났다. 어느덧 함께 하는 사람들도 120명을 넘었고, 제품이 커져가며 할 수 있는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L5에서 M1 역할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뭘 하면 내 자신의 퍼포먼스 총량과 효율이 늘어날지는 잘 아는데. 관점을 개인에서 팀 전체로 옮겨가는 것, 스케일업을 하는 것이 사실상 처음이라 토할 것 같이 어려웠다.

커다란 기술 부채들을 하나씩 청산하는 것도, 어떤 캐릭터들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기준을 세워 이력서를 500개 넘게 검토한 것도, 기술과 제품 사이에서 판단 기준을 잡아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것도, 내가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참아야 하는 것도.

정신이 없던 초행길이었다. 결국 어느 쪽도 잘 해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쉬운 만큼 더 할 수 밖에 없다. 더 좋은 분을 모실 때까지 버티려면. 언젠가 해야할 일이라면.

+ 여담이지만, ‘The Beautiful Mess’를 읽으면서 정말 도움이 되었다. 올해 찾아낸 최고의 뉴스레터.

목표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결과적으로 모두 아쉽게 끝났다. 그중에는 작년에 열심히 하던 ‘아라’도 있었고, tripleS의 Cosmos 앱 디자인도 있었다(내 생애 연예계 일을 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설리번 프로젝트도 7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시작하는 일이 처음에는 즐거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들고 부담이 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끝나니까 삶의 동력이 사라진 느낌이 든다. ‘새로운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삶이 내게 보내는 커다란 경고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준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저마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그 중에서도 정보를 가치로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목표를 위한 점을 찍으면서 스스로가 즐겁지 않다. 단편적인 일들에 너무 진심인걸까. 혹은 너무 방황하는 걸까.

꿈을 이뤄나가는 프로세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슬슬 뭐라도 끄적여볼 때가 된 것 같다.

이별

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이야기를 자주 나눴던 선생님도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지금 와서 이야기하지만 우리 가족도 갈기갈기 찢어질 뻔했다.

수많은 형태의 이별을 올 한 해 동안 보아왔다. 쉬이 익숙해질 수 없었고 많은 시간 동안 말하지 못한 채 홀로 울음을 삭혀왔다. 모두가 이별을 준비하는 일을 ‘멋진 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슬프고 무섭게 느껴진다.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쌓여있다. 얼마나 크든 작든 나는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문득 나는 얼마나 사람들의 이별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나 고민이 들었다.


예전에는 장난으로라도 ‘올해 일어난다고 작년에 말했으면 안 믿을 일’을 썼다면, 올해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계속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미친다고 나도 같이 미쳐버릴 수는 없었고, 그로 인한 비용과 아픔은 스스로가 견뎌내야만 했다.

다소 뜬금없지만, 나는 20대의 하이라이트 구간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만 22~23세가 창의성의 끝이라면(뉴턴은 이항정리를 23세에 발견했다), 만 28세 즈음은 사람의 사고 능력이 절정에 달하는 때(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IPO 성공한 나이)이다.

‘만 나이’가 통과되어 내년에도 같은 나이로 살게 되지만 20대라는, 길고도 짧은 흐름의 중반부에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에 무언가를 이뤄내려면 능력도, 생각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언제나 그렇듯, 잊을 것은 잊고, 행복했던 것은 어떻게든 손에 쥐어두고 싶다. 그렇게 최대한 가벼운 마음이 되어 새로운 관성에 올라탈 수 있길 바란다.


♪ 실리카겔 — NO PAIN